선악의 피안(善惡의 彼岸)호반별장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그것은 네 마음이 만든 것이니라.

본래 고요의 땅에 생명의 빛이..............

일분 법문

성경과 경전, 그 해석의 차이

맹물훈장 2010. 10. 5. 03:01
평소에 테니스를 즐기는 장로님과 가끔은 종교적 논쟁을 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투태(投胎)라는 말을 아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백과사전에도 없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했더니, 남자 없이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는 것을 투태라 하며 예수의 어머니가 성령으로 잉태 했듯이
불교에도 똑 같은 일로 탄생한 스님이 있다고 한다.
 불교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데 그럴 리 가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가 쓴 글을 보았는데 5조 홍인 대사의 탄생이
투태였고 그의 어머니를 모신 성모전(聖母殿)이 지금도 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강 뻔치를 얻어맞은 기분 이였다.
나름대로 불교 공부를 하느라 고 했는데......
 집에와 인터넷으로 5조 홍인의 출생을 찾아보았다.
평소에 소나무를 많이 심는 늙은 소나무 도사가 4조(四祖) 도신(道信)을 찾아가 법문을 청하니
"도(道)를 배워서 중생을 제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빨래하는 젊은 처녀에게 "집에 들어가 쉬었다 가도 되느냐"고 물었는데
그 처녀가 그 후로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홍인이란 설화가 있다고 한다.
 이튼 날 내가 테니스장에서 장로님을 만나 "찾아보니 그런 설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불법을 배워보고 싶은 소나무 도인이 처녀의 몸을 빌려 환생했다는 설화로,
불교에서는 그런 문제를 놓고 홍인이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
따지지 않는다." 고 했다.
그러나 장노는 "경전에 있는 말인데 믿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고집을 세우며
예수가 성령으로 탄생 했다는 것을 정당화 내지 사실화 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이 있는 게 아닌가?
옛 성현들이 어리석은 중생들이 알기 쉽게 비유나 방편으로 하신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이 
경전이나 성경인데, 성경에는 일 점 일획이라도 고치면 안 된다고 못 박아 놓았지만
경전은 팔만 사천 법문이 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했다.
즉 달이 진리라면 경전은 그 곳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고, 
석가는 진리가 있는 곳을 안내하는 안내자일 뿐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성경 자체를 몽땅 진리라 한다. 거기에 기록된 말 한마디 한마디를
무조건 사실로 믿어야 한다고 하니, 인간 예수를 진짜 하나님의 아들로 숭배하게 된다.
성경도 경전처럼 그 글을 쓴 시대적 배경과 풍습과 설화와 신화를 감미한 
문학적 작품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인정하고, 이 시대에 맞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같이
훌륭한 성인(聖人) 이었다" 고 해석함이 옳지 않은가?
 성경은 19세기 까지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그런데로 설득력이 있었는데
첨단 과학의 21세기에는 초등교육부터 컴퓨터와 물리학과 논술의 기초를 배우니
갈수록 인간 예수의 출생이 아이러니 한 게 아닌가?  
 --------맹물(성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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