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信仰)의 초보적 단계에서는 대게 달콤한 구원(救援)의 힘에 끌려 매달린다.
불교는 누구나 관세음보살을 지성(至誠)으로 열 번만 부르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다고 하고,
기독교는 누구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永遠)히 죽지 않는다. 고 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있게 경전(經典)이나 성경(聖經) 공부를 해 보면 다르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 보살님이 무조건 우리의 소원(所願)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 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幸福)할 수 있는가를 알려 주시는
스승님이며 길 안내자이시다. 신앙의 초보적 단계에서는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을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니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처나 보살이 걸어온 삶의 모습을 보고, 듣고, 배워서,
내가 바르게 실행(實行)해야 복(福)이 생기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에도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行)한 자 만이 갈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며 4년간 아버지의
뜻을 전하며 다녔으니 그 말을 믿고 행해야만 천국(天國)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도 예수도 다 우리의 스승이며 길 안내자(案內者)이다.
그런데 아직도 초보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만 하면 천국으로 가는 줄 알고 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위대한 힘에 의존하여 자신의 고통(苦痛)과 고난(苦難)을 막아주고 행복의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라는 기대로 부터 시작 하지만, 결국은 교주(敎主)의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의 바른 생활을 하여 행복(幸福)의 문을 열고 찾아가는 것이다.
경전이나 성경을 쓴 시기(始期)가 2.000년이 넘었으니 아무리 교주의 말씀이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心理) 문제 이외의 시대적 풍습과 사회적 변화는 감안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극락(極樂)이나 천국(天國)은 우리 마음에 있으니 그 누가 나를 구원(求願)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수행(修行)하며 찾아가 그 절대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맹물(성담)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