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설(說)하신
법화경(法華經)이라는 거룩한 경전이 있다.
법화경 비유품(譬喩品)에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 불난 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삼계(三界 = 欲界. 色界. 無色界)라 하고
그 속에 사는 중생을 철모르고 뛰노는 아이들로 비유(比喩)했다.
깨달으신 부처님(아버지)의 눈으로 보니 그대로 두면 모두가 타죽을 것이
분명하여 불이 났으니 빨리 나오라 하였으나 아이들은 듣지 아니하니,
방편으로 양과 사슴이 끄는 좋은 장난감 마차가 있으니 나오라고
아이들을 꼬여 낸 것이다. 아이들이 나와 보니 좋은 장난감(마차)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부처님)는 아이들(중생)에게 지금 놀고 있던 집(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삶)이 불난 집에 있는 것과 같고, 급히 불러낸 것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방편(方便)이었다 고 한다.
거짓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심에서 의도적으로 출발한 것이고,
방편은 만인의 이익을 위한 거룩한 마음에서 출발한 비유(比喩)인 것이다.
석가나 예수, 공자나 노자 같은 성인의 가르침 중에는, 어리석은 중생이 깨달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방편이나 비유로 설(說)하신 것이 많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성인(聖人)들의 방편을 '거룩한 허언(虛言)'
또는 '훌륭한 거짓말'이라 표현했는데, 그 거짓말 속에 거룩함과 훌륭함이
들어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고 본 것이다.
아직도 대개의 종교인은 경전이나 성경에 나오는 방편이나 비유를
사실(事實)로 믿고, 위대한 신(神)의 은총(恩寵)이 직접 나에게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성인의 뜻을 깨닫고 선행(善行)한 자신의 믿음과 노력의 대가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논리적(論理的)인 인과법(因果法)에 따라 나타나는데
그것은 시차(時差)는 있어도 오차(誤差)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