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높은 도(道)는 어렵지 않다. 오로지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초조 '달마' 대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2조 '혜가'에 이어 그의 제자인 3조 '승찬'대사가 지은 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구절이다. 즉 좋아하고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투명하고 명백한 도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무위 도인에게 불었다. "나는 티끌(地)이고, 구름(水)이며, 빛(火)이고, 바람(風)이고, 허공(空)이요." 라고 한다. 근본적(根本的)인 이 대답에 우주(宇宙)와 내가 하나임을 느끼는 화두(話頭)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세상(世上)을 비춰 보는 맑은 거울(鏡)이다. 거울(내 마음)에 비친 사물(事物)이 사실(事實)이 아니라 그냥 존재(存在)의 일부분만을 비춰 반사할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본성(本性 = 我)은 그냥 비춰만 보이는 맑은 거울(鏡)이였는데 시간이 지날 수 록 거기에 집착(執着)이란 때(垢)가 끼이므로 본성(本性)이 흐려져 좋다, 싫다, 분별하는 '나'가 생(生)하여 고통(苦痛)과 고난(苦難)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선사(禪師)들은 우리에게 "누구나 부처(佛)로 태어났지만 부처인 줄 모르고 중생(衆生)으로 산다"고 가르쳐 주신다. 수행(修行)은 이 거울(鏡)에 때를 깨끗하게 닦아내어 본래(本來)의 맑은 거울에 모습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거울에 비친 세상은 실(實) 다움이 없는 그냥 그림자와 같은 잠시 비춰 머물다 사라지는 허상(虛相)이니 그냥 비춰 볼 뿐, 좋다, 나쁘다, 분별(分別)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없는 것과 같은 무아(無我)가 된다. 거울(鏡)이 사물을 비춰 자신에게 들어오는 상(相)에 대해 무슨 불만(不滿)이 있겠는가? 만사(萬事)를 밝게 비춰는 보돼, 분별하고 시비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世上)은 한 점도 고칠 것이 없이 완벽한 화엄세계(華嚴世界)라네. 무위도인(無爲道人)은 세상이 돌아가는 길(道=理致)을 훤히 알고, "그러려니,,,", 하며, 어디에 있든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맹물(성담)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