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승(學僧)이 조주스님께 물었다.
"무엇이 부처(佛)이고 무엇이 중생(衆生)입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중생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학승이 다시 물었다. "도대체 누가 중생입니까?"
조주스님은 "물어봐라 물어봐!"라고 했다.
중생(衆生)이 마음을 닦아서 부처(佛)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중생은 닦으나 안 닦으나, 깨달으나 못 깨달으나 원래 부처다.
중생을 놔두고 부처는 따로 없다.
"물어봐라" 한 것은 이것 외에는 천년이 지나도록 물어봐도
다른 답은 나타나지 않는 다는 확신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부처와 중생을 구별 한다면
스스로 위대한 부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부처이고,
자기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중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실은 알고 모름에 상관없이 중생은 원래부터 부처다.
법화경(法華經) 신해품(信解品)에 탕자가 스스로 거부장의 아들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거부장의 아들인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거부장의 아들임을 모를 때도 사실은 거부장의 아들 이였다.
그처럼 중생은 지금 그대로 부처다.
두두 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라 하지 않는가?.
부처는 깨달은 중생이고, 중생은 깨닫기 전 부처라한다.
중생이 부처의 마음으로 부처의 행동을 하면 그것이 부처지,
거기에서 더 이상 무엇이 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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