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은 폭풍한설 몰아치는 몹시 추운날,
남루한 옷차림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조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날부터 스님은 여인과 한 방을 쓰며 공양도 그 여인과 겸상을 했다.
경허스님의 수제자인 '만공'스님은 경허스님의 이런 모습을 대중들이 알까 봐
문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큰스님을 뵈려오는 불자에게는 지금 "안 게신다"고 돌려보내셨다.
몇 칠이 지나도 여인이 나오지 않기에 만공스님이 들어가 보니
경허스님이 여인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함께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스님이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코도 눈도 분간할 수 없으며 손가락도 다 문드러져 없었다.
또 입고 있는 치마는 피 고름과 오물에 찌들러 얼룩지고 씻지도 않아 몸에서는 송장 썩는
악취까지 풍겼다.
만공스님은 경허스님의 경계(境界)를 한참동안 서서 생각했다.
자신이 만약 저런 문둥병 여자를 치료해 주며 저렇게 한 방에서 잘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경허스님 제자들이 밖에서 고하였다.
"큰 스님!, 이제는 여인을 내 보내소서! 신성한 절집에서 이런 법은 없습니다."
여인이 방문을 열고 황급히 나오면서
"죄송합니다. 큰스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따뜻한 방에서 재워주고, 따뜻한 밥 먹여주시고,
피 고름까지 닦아 주셨으니 이제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가는데 그 얼굴을 보고 스님들은 깜짝 놀랐다.
이어서 경허스님이 바랑을 챙겨 나오면서 "인연 없는 중생은 별 수 없구나!" 하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 가셨다.
우리의 자아(自我)는 주관적(主觀的) 환상(幻想)과
편견(偏見)에 의지(依支)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봉황(鳳凰)의 깊은 뜻을 뱁새가 어찌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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