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안목(眼目)으로 세상의 이치(理致)를 살펴보면, 모든 형상(形相)은
인연(因緣)에 의해 생성(生成)되었으며 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연기(緣起)에 의하여 소멸(消滅)하는 것이니, 이를 취산(聚散)이라 하는데
가유(假有)로 보면 도(道)의 절반쯤은 깨달은 것이다.
내 주위에 펼쳐지는 현상계(現象界)는 참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인가?.
똑 같은 사물의 현상을 접하더라도 내가 인식(認識)해야 만 발현(發顯)한다.
석가나 예수가 내 옆에 나타났어도 내가 관심을 같지 않으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종교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 훌륭한 교주(스승)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음에 눈을 뜨고 보면 시공(時空)을 초월해 삶에 지표가 될 스승님들이 있다.
그분들을 신(神) 같은 존재로 받들며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매달리지 말자,
구체적 현실과 역사 속에서 살다간 젊은 청년 예수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한
석가의 삶을, 진솔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면을 보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삶의 지침이 되고 나의 스승으로 인정할 때 깨달음이 온다.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 신(神)이 필요한가?
그래서 그 자리에 석가나 예수를 앉혀놓고 내 마음대로 부려 먹으려 하는가?
그러면 그분들은 브로커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성현의 가르침인 진리(眞理)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달아 실천하여야 하는데,
대개는 그냥 귀신에게 하듯 돈 놓고 소원만을 들어 달라고 빌고 있는 것은
거래를 하자는 것과 같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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