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善惡의 彼岸)호반별장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그것은 네 마음이 만든 것이니라.

본래 고요의 땅에 생명의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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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以心傳心)

맹물훈장 2023. 7. 25. 05:29

정치는 무인(武人)과 문인(文人)이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고려가 무인들의 세력 다툼으로 망했는가 하면

조선시대는 문인들의 권력 싸움에만 치우치다가 망했다고 한다.

 

양반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 시대에는 유교(儒敎)를 도입하고 불교(佛敎)를 박해하여

승려들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기르고 숨어서 수행을 하였는데,

그때 벽송 지엄 선사가 스승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벽계 정심선사를 만났다.

 

지엄선사는 정심선사로 부터 법(法)을 전수(傳受)받겠다고 3년 동안 오직 시봉을

열심히 들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스승은 법을 가르쳐 줄 생각도 않고,

법을 물어도 차일피일 미룰 뿐 법을 전해주지 않으신다.

 

그래서 만 3년이 되는 날 지엄선사는 떠나기를 결심하고 스승님께 3배를 올리고

걸망을 지고 나섰다. 얼마쯤 산길을 내려오는데 뒤에서 벽계선사가

"지엄아~!" 하고 부르기 돌아보니, "내 법을 받아라!" 하며

빈손으로 허공에 무엇을 던지는 시늉을 하신다.

 

그 순간 벽송 지엄선사는 번뜩 깨달았다.

법(法)은 고정된 실체(實體)가 없으므로 말로 전해 준다는 것은 모순이며,

보고 듣고 스스로 알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선가(禪家)에서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란 말이 있는데

즉 입을 여는 순간 본래의 생각과 하는 말과의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모든 오류는 언어로 부터 온다."고 하였나 보다.

그렇다고 언설(言說) 이외에 다른 쉬운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불교의 팔만 사천 경전과 기독교의 66권의 성경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교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말이나 글에 의존하지 않고,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하셨듯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야 말로

완벽한 법(法)의 전수(傳受)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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