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34년)전에 시골 읍 단위 광산촌에서 살 때 일이다.
우리 큰 딸은 유치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초등학교 6년간 전교 1등을 했고,
중학교 배반 고사(200여명)에서도 전교 1등으로 입학했고, 3년 동안 한 번도
그 자리를 놓치지 않은 큰딸애가 고등학교는 도청 소재지가 있는 큰 도시로
유학을 갔다.
전세방을 얻고 할머니가 열심히 바라지를 하여 주고,
시골서 가전제품 대리점을 하는 아빠 엄마가 반찬을 매주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정겨운 엽서를 자주 보내고 격려해도 처음부터 성적이 오르지 않아,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오면 "아빠 미안해요." 하면서 성적표를 내밀며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딸애가 안쓰러워 위로의 말을 찾으려 노력했었다.
하루는 딸애와 진지하게 인생 문제를 얘기했다.
아빠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볼 때 학교 성적이 사회에 나와 행복의
순위가 되는 것만은 아니더라.
이 사회라는 곳은 인간성이 좋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며, 행복의 순위도
인간성의 순위에 달려있는 것 같구나. 그러니 너는 기억 지수인 IQ보다는
도덕적 지능(MQ)과 실천적 지능(SQ)를 높이려고 노력하거라.
이 아빠가 바라는 것은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너희 반에서
인간성 좋은 사람(德있는 사람)을 뽑는다면 세 번째 손가락 안에 들으면 만족하겠다.
그 후로 내 위로의 말이 적중했나 보다.
큰 딸애 어둡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명랑한 성격을 되찾았다.
매주 마다 친구를 데리고 오고 친구 선물을 챙기고 아빠에게 엽서도 보내고.
성적은 특수반에서 중간을 맴돌았지만 졸업 때가 되어 아빠가 물어봤다.
"너의 반에서 누가 인간성이 제일 좋으냐?"
"아빠 내가 제일이야! 아빠 말씀대로 내가 노력했거든. 애들이 내가
제일 좋다고 해, 졸업 선물도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많이 받은걸요."
밝게 웃는 딸애가 자랑스러웠다.
그 후 교육대학을 나와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같은 직장인과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아 엄마가 된 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너는 너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는 한, 의사나, 박사나, 법관이 된
너의 동료들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큰딸은 인간성이 참 좋다, 예의 바르고, 착하고, 인정이 많다고 주위 사람들이 칭찬한다.
어쩌다 엄마 아빠 친구분을 식당에서 만나면 반가워하며 그분들의 식사비를 계산하고 나온다.
엄마 아빠에게 은행 카드를 하나씩 만들어 주며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쓰시라고 한다.
지금도 큰딸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부모를 찾자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무엇이든 사오니,
그 따뜻한 마음이 언제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들을 편하게 하여 주는 것 같다.
지금은 사위가 교장이 되었고 쌍둥이 손녀들은 교육대학 3학년이니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