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은 오랫동안 많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설법(說法)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염병이 창궐하는 천안 지역을 지나다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듯 달아나다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다.
그동안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법(法)을 많은 제자에게 가르쳤지만,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니 자신이 겁먹고 있음을 느끼고, 정작 나 자신이
생사(生死)에 허덕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스님은 동학사에 돌아와서 모든 대중에게
"그동안 내가 설(說)한 소리는 모두 허튼소리다. 대중들은 모두 자신의
근기와 인연을 따라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라." 말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했다.
몇 달을 그렇게 정진하던 중에 어느 날 문밖에서,
사미승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어떤 스님이 무비공(無鼻孔)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고 주지 스님께 묻는 말을 들었다.
경허스님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확철대오(確哲大悟)하시어,
문을 박차고 나와 오도송을 읊었다.
홀문인어 무비공(忽聞人語 無鼻孔),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돈각삼천 시아가(頓覺三天 示我家),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다.
선사(禪師)의 깊은 깨달음을 내가 어찌 다 알리 오마는, '콧구멍이 없다.'는 것은
존재는 하지만 숨을 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가?
모든 사물이 연기에 의해 한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니 자연이고,
자연의 4대 원소(地, 水, 火, 風)가 모여서 내가 되었고, 내가 흩어지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의미가 아닐까?
죽음이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형상은 바뀌나 질량은 변함이 없으니
내 몸을 이루었던 원소는 죽어도 이 지구상 어딘가에 흩어져 있어, 언젠가는
인연이 닿으면 다른 형상의 자양분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니 나는 살아도 지구에 있고 죽어도 지구에 있는 것이 된다.
현대 과학의 열역학 에너지 보존법칙을 온전히 이해하여,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인지(認知)하는 것이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한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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