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하루종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주위에 눈총을 받는것 같은 느낌을 뒤로 하고 개성 관광을 갔다. 두달전에 예약한 단체 모임에서 가는 관광이라 혼자서 연기 할 수도 없고.... 새벽 2시30분에 제천서 뻐스로 달려 임진각 역에 도착하니 6시경인데 서둘러 이침 식사를하고 7시부터 남북출입국 사무소에서 입북수속을 끝내고 뻐스 안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창 밖에는 장마비가 억수로 퍼 붓는데 차 안에서 2시간 30분을 기다리다 못해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북측에서 입국 승인이 내려오고 있는데 통신장비가 낡아서...어쪄구 저쪄구.... 옛날 6.25 전쟁때 어느 무식한 소대장(장교)이 무전병에게 대대와의 무전 통화를 독촉했다. 무전병이 "주파수가 안내려 와서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중대장이 "야~! 그 주파수가 얼마나 되냐? 내가 찝차 한대 내어 줄테니 빨리 가서 실고 와라!"하는 일화가 생각나서 혼자 피식웃었다.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왔는데 X선 검색대를 통과한 빽을 다시 열어보고는 그냥 옆으로 밀어내는 북측 출입국 사무소 군복입은 직원들을 보며 이 여름에 정신적 한기를 느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인지 뻐스 한 대에 안전요원8명과 안내요원 2명이 따라 다니며 왠만한 길은 이들이 다 차단하고 있으니 이정도면 안전할 수 밖에 없다. 뻐스 12 대에 나눠탄 관광객을 실고 개성 시내를 지나 박연폭포로 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자동차는 한대도 구경을 못했고 시내는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어가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시골마을은 모두가 빈집 같고 우중충한 시골 어귀마다 우비를 쓰고 서 있는 초병들이 가엽어 보였다. 1960년대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았다는데... 북측은 하나도 변한게 없는것 같고 남측은 백배도 더 잘 살게 됐으니, 총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을 잘 살 수 있도록 정치를 한 지도자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며 지도자를 잘 맞나는 백성도 복 받은 국민이라 생각이 된다. 옆에 같이 앉은 친구가 하는 말이 "저 옥수수나 콩 농사 지은것 좀 봐! 자기것 이라면 저렇게 내버려 두겠어? 밤중에 인분을 퍼다가 주더라고 제대로 농사가 되였을 텐데... 북한을 도와 주자는 데는 참고의 여지가 없지만 북측 체제나 사상을 존중하는 사람과는 언급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개성 600만평의 부지에 1~3차에 걸처 개발을 서두르는 개성 공단을 보며 북측 지도층은 체제를 염려하여 오기를 부리지만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개성공단 만이 북한 인민의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이 된다. 가난한 농경사회를 벗어나 산업화에 적극 참석하여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만이 북한 동포가 잘 사는 길인데 그 길을 마련해 주었는 데도 태클을 거는 북측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남한 정치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을것 같았다. 개성관광는 6시간 동안에 박연폭포, 선죽교, 표충사,숭양서원, 그리고 고려 박물관을 관람하고 사진도 정해진 곳에서만 찍었는데 오후 4시에 출입국 사무소 검색직원이 디지탈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일일이 다 확인하고 통과시키는데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관광은 보고 즐기는 재미 보다는 내가 북한 사회를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는 체험을 했다는 것이 더 소중하고 알찬 보람이였다. ----맹물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