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의 반은 가상이다!"
처음에는 이해(理解)가 않되였다.
"진리는 하나이며 영원불변한 것이라"고
교회에서 수 없이 많이 들었기 때문 이였다.
그러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열반정적(涅槃靜寂)의 법문을 대하고부터는
니이체의 사상이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젊은 나이에 심층 분석을 위해 파고들었던 니이체 전집에서 얻은 것은,
태어남이 곧 '비극의 탄생'이며 '신(神)은 죽었다'는 종교에 대한 회의(懷疑)와
'초인적(超人的) 삶을 지향해야한다'는 교훈만 건진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불교에 입문하면서 안목(眼目)을 넓혀 보니
석가나, 예수나, 니이체나, 최한기의 사상(思想)이
모두 다 위대한 초인적 힘에 대한 표현의 방법만 달랐을 뿐
그 근본 사상은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됐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면 표현의 방법도 다른 것을...
비유(比喩)로 밖에 전할 수 없는 느낌들을 해석의 차이로
십만 팔천리 씩 이나 멀어져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라는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뜻은
시대와 지형과 풍습과 문화와 지적 수준에 따라 표현이 다르니
본래(本來)의 뜻은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인 그 무엇이다.
보편적으로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잉태시켜 준 대상을 아버지라는 하지만
그 외에도 먹여 주고, 길러 주고, 가르쳐 주고,
정신적으로 깨우침의 교훈을 주신 분을 그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어
아버지라는 말로 표현을 해 왔다.
불교(佛敎)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사생자부(四生慈父)라 했고
스님들은 출가하여 석가모니의 아들 같은 마음으로 살겠다고
석(釋)자를 성으로 삼아 이름을 지어 수행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뜻의 아버지는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지극히 사랑하신 위대한 그 무엇(?=神)이 있었다 하자!.
그런 그(神)을 어리석은 중생에게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 같은 훌륭한 분이라 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신 분(?)이 있었다면
그 위대한 신의 아들과 같은 존재라 비유해서 표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게 않은가?
이 를, 아들은 아버지의 섹스로 인해 태어 난다는 평범한 지식의 잣대를
적용하여 부정 하려 하거나, 또는 기적을 이르키는 위대한 힘이 있다고
비유(比喩)를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언어(言語)로부터 오류(誤謬)가 생겨났으니
언어가 존재하는 한 진리의 완전 표현은 불가능(不可能) 하다.
그래서 '프로드리히 니이체'는 진리(眞理)의 반(半)은 가상(假想)이라 했고
선사(禪師)들은 진리(眞理)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알려 줄 수 없으니.....
----맹물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