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自己) 동일적(同一的) 자아(自我) 없이도 업(業)이 자기 보(報)를 낳기까지
인과(因果)의 연속성을 이룸으로서 업보(業報)가 성립(成立)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 연속성(連續性)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發生)하는 것일까?
업(業)이 남긴 업력(業力)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존(保存)되기에
악인악과(惡因惡果) 선인선과(善因善果)가 성립(成立)하게 되는가?
대개의 종교는 인간(人間)보다 위대한 신(神)이 있어 그 신(神)이 인간의 내면(內面)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신(神)이 인간의 업(業)을 다 기억하였다가 거기에 맞는 보(報)를
준다고 믿기에 신(神)에게 용서를 빌고 그러면 그 죄(罪)가 사하여 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업(業)은 그 자체로써 과(果)를 낳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지,
과(果)가 신이 내리는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업(業)을 신업(身業)과 의업(意業)으로 나눠 보면 신업(身業)의 업력(業力)은
음주가 간에 남긴 술기운을, 흡연이 폐에 남긴 니코틴 등 신체적 행위를 통해서
몸에 남긴 흔적은 후에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해도 그냥 지워지지 않고
간질환이나 폐병으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
의업(意業)의 경우는 자전거 타기 연습 과정으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잘 안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연습하면 어느 날 잘 탈 수가 있다.
연습과정을 신업(身業)으로 보면 잘 타게 된 결과(結果)를 보(報)로 볼 수 있다.
즉 신업(身業)은 끝났어도 그 습(習)은 아뢰야식에 남아 있으므로 인연이 닿으면
그 습(習)이 일으키는 행(行)으로 또 다른 보(報)가 나타난다.
-------맹물(성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