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善惡의 彼岸)호반별장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그것은 네 마음이 만든 것이니라.

본래 고요의 땅에 생명의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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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귀

맹물훈장 2013. 2. 26. 07:07
몽술이라는 행자가 만공스님 앞에 나가 절을 했다.
"네가 누구냐?"
"'몽술'이라 합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왔느냐?"
"스님의 법문을 들으려 왔습니다."
"법문을 어디로 듣느냐?"
"귀로 듣습니다."
"귀로 들으면 잘못 듣는 법문 이니라"
"그렇다면 어디로 듣습니까?"
노스님은 들고 있던 주장자로 행자의 머리를 딱! 때리고
"알았느냐?"하고 다시 한 번 더 때릴 기세로 주장자를 번쩍 들었다.
"알았다 하여도 이 주장자를 면치 못할 것이고, 
알지 못하였다 하여도 이 주장자를 면치 못하리라 ! 속히 일러라!"
행자가 머리를 만지며 "아야! 아야!" 하니
스님은 주장자를 내리고 빙그레 웃으셨다.
만공스님은 막 절에 들어온 어린 행자가 
알고 모르고 하는 분별심을 떠나 아야! 아야! 하는
무심의 지혜작용을 드러낼 줄 아는 법기(法器)임을 확인했다.
만공스님은 법문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어디로 듣는단 말인가?
불가에서는 흔히 '마음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법(法)의 비(雨)'를 심지법문(心地 法門)이라 한다.
이 '심지법문'을 듣는 것은 '마음의 귀'가 열려있어야
마음 법문이 진실하게 들린다.
"도(道)가 모습(色身)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하고
'남약 회양'스님께 '마조스님'이 물으니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道)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삼매(三昧)도 그러하다고 했다.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진리를 볼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성철 스님은 불교를 바로 알려면 바위가 항상 설법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했으니, 이른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정 설법(無情說法)은 사람의 말이 아닌 주변의 풍경이나 사물이
들어내는 진실을 알아듣는 것인데 그것은 의식으로 조작해서는
알 수 없는 진실의 세계이다.
쓸데없는 망상과 분별의식 일체 관념이 사라졌을 때 있는 
그대로 보이고 들리는 것이 선(禪)의 세계인 것이다.
------맹물(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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