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존 당시에 4명의 수행자(修行者)가 나무 그늘에 앉아 괴로움(苦)에 대하여 논(論)하였다.
첫 번째 수행자는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이성(異性)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라 했고,
두 번째 사람은 화(瞋) 나는 일을 억제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수행자는 배 고품을 참는 것이고,
네 번째 수행자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라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곳을 지나시다가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잠시 멈추시고 법문(法門)을 하셨다.
"너희들은 아직 괴로움(苦)의 뜻을 온전(穩全)히 모르고 있나 보다.
모든 괴로움은 육신(肉身)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육신이 괴로움의 근원(根原)이다.
그러므로 온 갓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몸과 마음이 바라는 욕망(欲望)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몸뚱이와 마음을 내가 쓰는 체험학습(體驗學習) 자료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본래(本來)의 나(我)는 몸과 마음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때로는 몸과 마음이 잘못된 길로 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준다.
그 지켜보고 가르쳐 주는 자가 본래의 나(我)이며
그 성품(性品)은 부처님과 동일(同一)하다.
몸과 마음을, 본래의 나(我)가 쓰는 도구로 생각한다면 고통과 고난은 사라진다.
즉, 자동차를 육신(육신)이라 한다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운전수가 본래의 '나'에 비유된다.
자동차를 잘 관리하며 쓰다가 고장이 나면 고쳐서 쓰고, 그러다가 고칠 수 없이 망가지면
버리고 새로 장만하면 되니까, 도구(육신)에 대한 애착(愛着)을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는 유여열반(有餘涅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