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고 깨달음은 전식득지(轉識得智)를 말한다.
식(識)이 곧 지혜(智慧)는 아니므로 식을 지혜로 전환하는 과정을
우리는 수행(修行)이라 한다.
그러니 불교인은 우선 경전을 많이 읽어 바른 지식(知識)을 쌓아야 한다.
바른 지식이 있어야 그것을 실행(實行)하여 복(福)을 받을 수 있는데
부처님의 설법(說法)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무조건 복을 달라고만 비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것이 없다.
지금은 문화 수준이 높아 책을 읽지 않고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많은 정보와 지식이 넘쳐 나는데, 바른 지식이 아닌 것을 이익에 집착하여
잘못 사용하여 구속되는 사람들이 자주 뉴스에 나오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본성(本性)은 깨끗하고 순수한 물과 같아 이 물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성질이 바뀌고, 쓰임이 달라지고, 이름이 정해진다.
차 잎을 넣으면 녹차가 되고, 커피를 넣으면 커피요, 우유를 넣으면
우유라 불리니, 본래 맹물인데 물듦에 따라 이름과, 쓰임과, 맛과, 가치가 달라진다.
즉 마음이 본성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어린 아이가 노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내 고집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물듦을 빼 내기 위해서는 '나'라는 생각부터 조복(調伏) 받아야 한다.
그래서 금강경에 깨달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 했는데
금강반야바라밀의 지혜는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별(分別)과 집착(執着)을 버리면 보시(布施)를 하게 되고
그러면 인욕(忍慾)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얻게 된다.
맹물이 인연(因緣)에 따라 이름과 맛과 향이 다른데,
다시 본래(本來)의 순수한 맹물로 되돌리려면 물듦을 세탁하여 빼 내어야 한다.
자연(自然)은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는데
수행자(修行者)는 귀 기울이고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맹물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