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자와 스님이 함께 길을 가며 우주의 생성과 사물의 존재에 대한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다가
"스님, 이 우주가 언제 부터 생성된 것이라 생각합니까?"하며 학자가 질문을 하였다.
스님은 "5분 전입니다." 라고 대답하며 뚜벅뚜벅 걷어가고 있다.
학자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모든 상(相=現象)은 자신이 인식(覺)하였을 때(所) 나타나는(顯發) 것이니
학자와 스님이 우주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지 5분정도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금강경에는 제상비상(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상(相)(존재의 형상)이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곧 변하여 없어지는 가유(假有)라는 것을 알면,
본래(本來)부터 항상 변하지 않는 절대 무한의 세계가 드러난다.라는 뜻이 아닌가?
내 주위에 펼쳐지는 현상계(現象界)는 참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 의해 펼쳐질 다름이니 똑 같은 사물의 현상을 접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각자 다르다.
석가나 예수가 내 앞에 나타나도 내가 마음을 열지 않고 무관심하면 성현이 나타난 게 아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달음은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것이니 우주의 탄생이 나와 함께 하고,
나의 참 생명은 외부 조건에 의해 구속 되어질 수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다.
큰 깨달음을 위해서는 훌륭한 스승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에 눈을 뜨고 보면 시공(時空)을 초월해 삶에 지표가 될 스승님들이 많다.
그분들을 신(神) 같은 존재로 받들며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매달리지 말자,
구체적 현실과 역사 속에서 살다간 젊은 청년 석가와 예수를 이해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삶의 지침이 되고 나의 스승으로 인정할 때 깨달음이 온다.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 신(神)이 필요한가?
그래서 그 자리에 석가나 예수를 앉혀놓고 내 마음대로 부려 먹으려 하는가?
그러면 그분들은 브로커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다들 성현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소원만을 들어 달라고 돈 놓고 거래를 원하고 있으니,,,
-----맹물(성담)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