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선종황제(宣宗皇帝)가 젊은 시절 한 때 출가하여
대중(大中)이란 법명(法名)을 받고 '향엄선사' 제자로 있을 때이다.
그 절에는 수좌(首座)인 '황벽스님'이 매일 정성스레 예불(禮佛)를 드리고 있는데
'대중스님'이 '황벽스님'께 물었다.
"부처에게서 찾지 않고 법에서 찾지 않고 예불만 하여 무엇을 찾을게 있겠소?"
"부처에게서 찾지 않고 법에서 찾지 않고 그러면서도 항상 이렇게
지극한 공경(恭敬)과 하심(下心)으로 절을 해야 한다네"
"절은 해서 무엇 하오,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서 절만 하다니 어리석은 짓이 아니오?"
그 때 '황벽스님'은 벌떡 일어나 '대중스님'의 따귀를 철썩 때렸다.
'대중스님'은 "이런 난폭한 자가!"하고 얼이 빠져 있는데
"이런 경우는 난폭하다느니 친절하다느니 따질 때가 못 된다!"하며
연속으로 두 대를 더 후려쳤다.
호되게 뺨을 맞은 대중스님은 그 후에 환속하여 '선종황제'가 되였는데
그 때 뺨을 때려준 황벽 스님에게 늘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삼라만상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인데 그를 관(觀)하는 우리의 주관적(主觀的) 사고(思考)가
욕망(慾望)과 환상(幻相)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은 것이다.
신하들은 '황벽선사'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권유를 했지만
'선종황제'는 오히려 '취행사문'이라는 호(號)를 하사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열심히 도(道)를 닦으려 노력하면 상근기(上根器),
도(道)를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 중근기(中根器),
도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하면 하근기(下根器)로 나눈다.
'선종황제'가 하근기(下根器)였다면 지난 날 황벽선사의 일에
괘심 죄를 적용하여 엄벌에 처했을 것이다.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체벌(體罰)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자녀 교육을 보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하근기(下根器)의 학부모들이,
스승(師)을 스승으로 보지 않고 근로자(勤勞者)로만 보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데 먼 안목으로 바라보면 어린 시절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선생님의 체벌(體罰)이야 말로 진정 고마운 사랑의 매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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