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아주 오래 (60년) 전에 톨스토이 단편집에서 '비난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는 다른 이단(異端) 종교에 대한 면모를 드러낸 작품이다.
시골 어느 작은 교회에 늙으신 목사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는데,
하루는 잘 생긴 젊은이가 찾아와서 자기도 목사(牧師)라며 함께 손잡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보자고 제안을 했다.
노 목사님이 그 방법을 물어보니, 젊은 목사는 "내가 기적(奇跡)을 일으켜
많은 신도를 끌어모으면, 큰 교회를 짓고 부자(富者)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노 목사님은 "나는 양심에 부끄럼 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거절했다.
얼마 후, 젊은 목사는 기적을 보여 준다며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장님을 눈을 뜨게 하여, 그를 믿는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큰 교회를 세우고 날로 번창해 갔다.
노 목사님의 교회는 교인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 나중에는 목사님 혼자서
예배를 드리는데, 젊은 목사가 찾아 왔다.
"지금 목사님은 저와 손잡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노 목사는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 한 점 부끄럼 없이 기도를 하고 있을 뿐이라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젊은 목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돈을 주어 앉은뱅이와
장님 역할을 시킨 것이 밝혀져 감옥으로 가고, 교인들은 다시 작은
교회로 돌아와 훌륭하신 노 목사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라는 내용이었다.
세상엔 기적이란 없다. 기적 같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물(事物)의 특성(特性)이 연기적(緣起的) 법칙에 의해 진행되었던 것들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기적이란 사건을 양자역학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 왔다는 것은 나의 종말(죽음)을 비유함이며,
기독교의 '요한계시록'이나, 불교의 '아미타경'의 내용은 사후(死後)의 공포를 느끼는
신자(信者)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한 무외시(無畏施)의 방편이 아닐까?
기적(奇跡)이라고 하며 갑자기 크게 성장하는 이단 종교 집단은,
대개 '사후 세계를 보장한다.' 는 명목을 내세우니 일단 의심해 보고,
선량한 국민들이 쉽게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