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제8대 황제 휘종(1082~1135)은
풍류천자(風流天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림과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휘종은 가끔 화가들을 불러 모아 화제(畵題)를 내걸고 그림을 그려보라 고 한다.
한 번은 "감추어진 절(寺)"이라는 제목을 걸었다.
화가들은 감추어진 절을 표현하느라고 끙끙거리며, 어떤 이는 희미하게
절 지붕만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울창한 숲속에 탑 끝만 보이게 그렸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일등상은 절(寺)이 보이지 않았다.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
올라가는 그림이다.
물을 나르는 스님을 보면 절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꼭 그 어떤 물체를 보아야 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벌이나 나비를 보면 가까이에 꽃이 있음을 알듯
집을 안 그리더라도 산 넘어 가느다란 연기만 보아도 인가가 있음을 안다.
바람을 그릴 수는 없어도 갈대의 그림을 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환경 전문가는 어디를 가든지 강물 한 가지만 보면, 그 나라, 그 도시,
그 지역의 환경을 직감 한다고 한다.
세상사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한 가지 행동을 보면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수 십 가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고승을 찾아가면 "차나 한 잔 하고 가세요."하신다.
차 한 잔을 나누다 보면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게 되어있고,
그 말 속에 그 사람의 인격과 소원이 무엇인지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듯이 상대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으면
미리 대처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현명한 방법인가.
그래서 스님은 만나기만 해도 나에게 적당한 방편이나 법문으로 알아서
가르침을 주시니 삶의 활력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