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숙종대왕이 선비 차림을 하고 홀로 수원 쪽으로 민정 시찰을 나갔다.
말을 타고 천천히 냇가를 지나는데 저만치 에서 어느 농부가 지개에
관을 짊어 놓고 물 가에 땅을 파는 게 아닌가.
숙종대왕이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서 물어 보았다. "뭐 하고 계십니까?"
농부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젊어서 홀로되신 어머니가 중병으로 10 여년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너무 가난하여
약도 한 첩 못써서 마음이 아프며 지관을 부를 처지가 못 되어 저 산 밑에 사는 치 거사에게
말했더니 이곳이 명당이라 일러 주기에 홀로 장례를 지내려고 한단다.
숙종대왕이 생각해 보니 순박한 농부는 효성이 지극한데, 치 거사란 자가 괘심해 보였다.
장마가 나면 다 떠내려 갈 냇가에 묘 터를 잡아 주다니...
즉석에서 지필묵을 꺼내 편지를 섰다. "짐이 이르노니 이 편지를 가져가는 효자에게
쌀 300 가마와 모친의 묘를 쓸 명당자리를 잡아주도록 하라"
숙종은 편지를 접어서 농부에게 주며 수원 현감에게 전하라고 하고 산 밑 치 거사를 찾아 갔다.
깊은 산속 움막집에 도착하여 주인장을 여러 번 부르니 한 참 만에 괴죄죄한 차림에
늙은이가 나오는데 형색이 말이 아니다. "노인장께서 저 냇가에 묘 터를 잡아 주었소?
장마가 나면 다 떠내려 갈 게 분명 한데 어찌 그런 못 쓸 짓을 하였소?"
노인은 선비를 보고 "개 코도 모르는 사람들이 따지기는 잘 하는구려 모르면 가만히 있으시오,
그 자리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삼백 가마니가 들어오는 명당이란 말 이오" 숙종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러나 태연한 척하며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이처럼 시골에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살고 있습니까?
남의 운명은 잘 보면서 자신의 운명은 모르는 게 아니오?"
노인은 "쥐뿔도 모르면서 뭘 자꾸 물으시오, 이 자리는 나라 임금님이 찾아 올 명당 중에 명당이란 말 이오"
숙종대왕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럼 임금임이 언제 온다는 거요?"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3년 전에 집 지을 때 날짜를 짚어 놓은 게 어디 있을 텐데..." 하며
방을 들어가 이것저것 뒤적이더니 황급히 나와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며
"바로 오늘입니다. 대왕님이 아니십니까?"
숙종은 후일에 그분을 불러 자신의 묘 터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고 금은보화를 내렸으나,
치 거사는 명당을 잡아드리고 지관으로서 적당한 보수만 받고 어디론가 떠났다.
그 터가 지금 숙종대왕의 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