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善惡의 彼岸)호반별장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그것은 네 마음이 만든 것이니라.

본래 고요의 땅에 생명의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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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지어내는 극락과 지옥

명성이 높은 한 일본 무사가 하루는 선사(禪師)를 찾아 와 극락(極樂)과 지옥(地獄)이 정말 있느냐고 물었다. 선사(禪師)가 정말 있다고 말하자 그는 나에게 보여 주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하며 비웃고 있었다. 선사는 "지금 당장 내가 구경시켜 줄 수 있는데 보겠느냐?"고 하니 무사는 반가운 모습으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따라 나섰다. 선사는 밖으로 나 가다가 획 돌아서며 따라오는 무사의 뺨을 후려쳤다. "이 바보 같은 놈아! 극락과 지옥이 어디에 있는데 그것을 보겠다고 따라 오느냐?" 갑자기 뺨을 얻어맞고 바보 취급을 받은 무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칼을 빼 들고 눈을 부름뜨며 선사에게 말했다. "당장 내 앞에 무름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단 칼에 베어 버리겠다!" 선사는..

지난 글 편집 2023.06.23

하심(下心)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마음을 낮추고 비우는 하심(下心)이 수행자로서는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보이는 물건이 아니기에. 담을 수 있는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낮추고 비우라는 것인가? 원효스님이 하심을 수행하실 때, 어느 시골 사찰을 찾아가서 신분을 말하지 않고 행자생활을 자처하여 3년간 공양간 일을 맡아 하겠다고 했다. 땔감을 준비하고,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스님들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열심히 하였다. 어느 날, 여러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을 기웃 거리다 보니 자신이 써 놓은 '금강 삼매경론'을 주지스님이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학승이 닥아 와서 "네놈이 무었을 알겠다고 스님들 공부하시는데 기웃거리느냐? 썩 물러가 청소나 하거라."하는 것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지난 글 편집 2023.06.23

콧구멍이 없다

경허스님은 오랫동안 많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설법(說法)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염병이 창궐하는 천안 지역을 지나다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듯 달아나다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다. 그동안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법(法)을 많은 제자에게 가르쳤지만,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니 자신이 겁먹고 있음을 느끼고, 정작 나 자신이 생사(生死)에 허덕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스님은 동학사에 돌아와서 모든 대중에게 "그동안 내가 설(說)한 소리는 모두 허튼소리다. 대중들은 모두 자신의 근기와 인연을 따라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라." 말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했다. 몇 달을 그렇게 정진하던 중..

지난 글 편집 2023.06.11

그런 신(神)은 없다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 마을에서는 동구 밖에 신(神)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원주민들이 사냥을 나갈 때마다 그 신(神) 앞에 제물(祭物)을 놓고 "이 제물을 드시고 사냥이 잘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사냥을 하는데 때로는 많이 잡아 올 때는 그 신(神)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오지만, 한 마리도 못 잡고 돌아올 때는 제물은 받아먹고 자기 의무를 못 했으니 이놈의 신(神)은 혼이 나야 정신이 든다. 하며 몽둥이로 마구 두들겨 팬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또 그 신(神)에게 제물을 놓고 빌며 사냥을 나간다고 한다. 아버지가 목사이고 어머니가 장로의 딸이었는데 그 아들 '프로드리히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唯一神)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

지난 글 편집 2023.06.01

멍청한 신(神)

신(神)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두려운 존재(存在)로 인식(認識)했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멍청하고 띨띨한 신(神)도 있어 안심(安心)이 되네. 나도 그대도 미래의 신(神) 아닌가? 가만히 신(神)을 분석해 보면 자기 정신(精神)을 가지고 사는 모든 존재(存在)의 의식(意識)을 신격화(神格化) 하지. 그게 사물(事物)의 조형적(造形的) 특성(特性)이라 땅에는 지신(地神), 물에는 수신(水神), 불에는 화신(火神), 바람은 풍신(風神), 인간은 정신(精神), 나무에는 목신(木神). 무엇이 두려운가? 자연의 오묘(奧妙)한 법칙과 모든 생명의 고귀한 지혜(智慧)를 생각하니 신비롭기 그지없네. 신(神)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理解)하여야 할 대상이 아닌가?

지난 글 편집 2023.05.29

개 코도 모르면서

하루는 숙종대왕이 선비 차림을 하고 홀로 수원 쪽으로 민정 시찰을 나갔다. 말을 타고 천천히 냇가를 지나는데 저만치 에서 어느 농부가 지게에 관을 짊어 놓고 냇물 가에 땅을 파는 게 아닌가. 숙종대왕이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서 물어보았다. "뭐 하고 계십니까?" 농부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젊어서 홀로되신 어머니가 중병으로 10년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너무 가난하여 약도 한 첩 못 써서 마음이 아프며 지관을 부를 처지가 못 되는데, 저 산 밑에 사는 갈 거사가 찾아와 이곳이 명당이라 일러 주기에 홀로 장례를 지내려고 한단다. 숙종대왕이 생각해 보니 순박한 농부는 효성이 지극한데, 갈 거사란 자가 괘심해 보였다. 장마가 나면 다 떠내려갈 냇가에 묘 터를 잡아주다니... 즉석..

지난 글 편집 2023.05.21

멍텅구리 법문

愚者充耳 賢者會意(우자충이, 현자회의) (어리석은 자는 귀를 막고 듣지 않으나, 현명한 사람은 그 말의 뜻을 깨닫는다.) 온 곳을 모르는 그 인간이 갈 곳을 어찌 알겠는가?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노라. 그것 또한 멍텅구리. 올 때는 빈손으로 왔으면서 갈 때는 무었을 가져갈까? 공연한 탐욕을 부리 누나, 그것 또한 멍텅구리. 백년도 못 사는 그 인생이 천만년 죽지 않을 것처럼 끝없는 걱정을 하는 구나, 그것 또한 멍텅구리. 세상에 학자라 하는 이들 동서의 모든 걸 다 안다 하되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구나, 그것 또한 멍텅구리. --(경봉스님 법문 중에서)-- 내가 시급히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지난 글 편집 2023.05.02

마음 밭

베트남 출생의 ‘틱낫한’ 스님은 우리의 마음을 밭에 비유했다. 우리의 마음 밭 속에는 아주 많은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은 전생으로부터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로서, 기쁨, 사랑.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씨앗이 있는가 하면 짜증, 우울, 절망, 분노 같은 부정적인 씨앗도 많다. 그 씨앗은 지금도 적당한 물과(?) 빛(?)과 시간(時間)의 인연(因緣)이 주어지면 순식간에 자라나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 밭에 있는 어느 씨앗에 물을 주고 빛을 주는 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타나게 된다. 긍정적인 씨앗에 이해와 사랑에 물을 주고 희망의 빛을 주면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의 꽃이 피고, 부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면 짜증과, 절망과, 분노가 자라서 화(禍)을 일으키며 결국 불행해진다. 우리가 행..

지난 글 편집 2023.05.02

원생보살(願生菩薩)

(이미지 설명) 심우도(尋牛圖)에 입전수수 (入纏垂手) (道를 다 깨달은 스님이 極樂으로 가지 않고 衆生을 救濟하려 俗世로 내려온다.) 원생보살(願生菩薩) '대안'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어린아이 젖을 먹이는 동네 아낙네들을 찾아다니며, "어미를 잃고 굶어 죽어가는 불쌍한 어린 새끼가 내게 있습니다." 하며, 젖 동냥을 하러 다닌다. 는 소문을 듣고, 하루는 원효가 대안 스님을 만나기 위해 그가 기거하는 산속 동굴로 찾아갔다. 대안은 없고 너구리 새끼 몆 마리가 어미젖을 찾으며 슬피 울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는 굶어 죽어있어 원효는 죽은 새끼 너구리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진심으로 아미타경을 염불하였다. 이때, 대안이 들어와 "새끼 너구리들이 경(經)을 알아듣겠소?"하고 물었다. "그럼 너구리들이 알아듣는 ..

지난 글 편집 2023.04.24

정토(淨土) 신앙(信仰)

모든 종교는 위대한 힘에 의존하는 타력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이 세상의 중생들은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허우적이고 있는 존재인데, 종교적 신앙이란 괴로움이 가득한 이 차안(此岸)에서 즐거움이 가득한 저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여정(旅程)이다. 그 방법에는 자력 신앙(自力信仰)과 타력 신앙(他力信仰))이 있다. 자력 신앙의 대표가 불교(佛敎)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인 소승불교(小乘佛敎)이다. 이는 스스로 깨달아 피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누구나 수행(修行)을 할 수 있는 재능(智慧)을 타고 났으니, 잘 배우고 익히면(깨달음) 스스로 헤엄쳐 피안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타력 신앙의 대표인 예수님의 가르침은 망망대해에 홀로 빠진 사람들은 수영을 잘해도 절대로 ..

지난 글 편집 202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