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善惡의 彼岸)호반별장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그것은 네 마음이 만든 것이니라.

본래 고요의 땅에 생명의 빛이..............

분류 전체보기 1439

이름과 실체

아주 옛날 '요나라'에 현명한 '미란다 왕'이 있었다. 그는 '나가세나'라는 현인(賢人)을 찾아가 "당신은 누구며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나가세나'는 "동료 수행자들이 '나가세나'라고 부르지만 그건 단지 분별을 위한 임시 호칭이며 통칭에 불과하며 실체적(實體的)인 존재(存在)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실체적 존재란 언제 보아도 변하지 않는 그대로의 것인데,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에 의한 취산(聚散)이니 수시로 변하며 인연(因緣)이 다하면 없어진다. 실체적 존재는 없지만, 그러나 결합(結合)이 존재하는 동안 편의상 호칭이 있다. 그런데 이름과 대상에 관한 미망(迷妄)이 있다, 우리는 한번 정해진 이름의 대상이 이름과 같이 변치 않고 영속적인 것처럼 믿는데, 사실은 이름은 그대로인데 대상은 수시..

지난 글 편집 2023.11.11

선악(善惡)의 탄생

(맹자와 순자) 선(善)과 악(惡)의 근본(根本) 바탕은 성(性)에서 나오는데, 그 성을 파헤처 보는 것이 심성론(心性論), 인성론(人性論), 또는 불성론(佛性論)이라고 도 한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은, 사람의 본성(本性)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각(自覺)할 수 있는 도덕적 관점이 있어, 동정과, 수치심과, 겸손과, 지혜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기에 본성은 선(善)이라고 주장했다.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은, 사람의 본성은 당연히 자연적 생리적 현상 속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같이 식욕과 성욕이 우선함으로 악(惡)이다. 선이라는 것은 모두 수양에 의한 인위적(人爲的)인 것이라 했다. 고자(告子)는 성무선무불선(性無善無不善)이라고 했다.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지도 않고 선(善)하지..

지난 글 편집 2023.11.01

이단(異端)

(기적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아주 오래 (60년) 전에 톨스토이 단편집에서 '비난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는 다른 이단(異端) 종교에 대한 면모를 드러낸 작품이다. 시골 어느 작은 교회에 늙으신 목사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는데, 하루는 잘 생긴 젊은이가 찾아와서 자기도 목사(牧師)라며 함께 손잡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보자고 제안을 했다. 노 목사님이 그 방법을 물어보니, 젊은 목사는 "내가 기적(奇跡)을 일으켜 많은 신도를 끌어모으면, 큰 교회를 짓고 부자(富者)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노 목사님은 "나는 양심에 부끄럼 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거절했다. 얼마 후, 젊은 목사는 기적을 보여 준다며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

지난 글 편집 2023.11.01

마음의 눈

---창작 서각. 관(觀) 맹물/성담/유해천---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보는 것은 눈(眼) 뿐이 아니라, 귀(耳)와, 코(鼻)와, 혀(舌)와, 몸(身)과, 의식(意)으로도 본다. 눈으로는 형상과 색상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들어 보고, 코로는 냄새를 맡아 보고, 혀로는 맛을 보고, 몸으로는 느껴보고 의식으로는 전체의 의도를 알아본다. 이렇게 여려 기관을 동원해서 보는 것 외에 마음으로 보는 것이 있는데 이를 관(觀)한다고 한다, 관하는 것은 육체로 보는 육안(肉眼), 마음으로 보는 심안(心眼), 지혜의 눈으로 보는 혜안(慧眼). 하늘의 뜻으로 보는 천안(天眼),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불안(佛眼)이 있다. 어떤 마음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긍정(肯定)과 부정(不定)의 결과가..

지난 글 편집 2023.11.01

비교 종교학

동양사상(東洋思想)에는 선오설(善誤說)이란 게 있다. 즉 착함(善)과 착하지 못함(誤)이 있다는 말이다. 서양사상(西洋思想)은 선악설(善惡說)이 있다. 즉 선(善)이 아니면 악(惡)이라는 이분법(二分法)이다. 우리는 늘 나와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부정(不定)하는 주관적(主觀的) 고정관념(固定觀念)이 있다. 세상(世上)의 이치(理致)가 서로 연관(聯關)되어 유사한 것이 많은데 봄꽃을 대표하는 것이 매화라고 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교는 자연의 현상에 따라 되어가는 그대로의 연기법(緣起法)과 그로인한 인과법(因果法)을 진리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진리는 오직 하나이며 예수님의 말씀만이 진리라고 믿고 부동(不動)의 마음으로 그 이외는 다 진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종교 간에 오해가 생..

지난 글 편집 2023.10.23

슬픈 가을 2

슬픈 가을 맹물/유해천 얼마나 힘드냐고, 매일 걱정하는 님이 있어 눈가에 고이는 물을 넘치지 않도록 견뎌봅니다. 수술 후 체중이 10kg 줄었으나 코스모스 핀 호숫가 소나무 그늘에 홀로 않아 먼~산에 내려오는 단풍의 마음을 읽어 보며. 낙엽 지는 가을 초목(草木)은 해마다 가을를 노랗고 빨간 슬픔으로 깔았지만 지난 날 솟구치는 열정은 그냥 그마저 아름답다 했나 봅니다. 내게 이 가을은 온통 슬픔이옵니다. 추억을 담은 잎들을 떨구고 벌거 벗은채 숨죽이며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초목과 같이, 새봄이 오면 새싹이 돋듯 내 건강도 솟구쳐 피어나길 염원해 봅니다.

멍텅구리 부처

인간은 본래(本來) 불성(佛性)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미혹(迷惑)에 가려있으니, 미즉불 시중생(迷卽佛 是衆生) 어둠을 헤매면 부처가 중생이 되고 오즉중생 시불(悟卽衆生 是佛) 진실을 깨달으면 중생(衆生)이 부처가 된다. 부처는 깨달은 중생이요, 중생은 깨달지 못한 부처이다. 번뇌(煩惱)란 무엇인가? 마음이 시달리는 괴로움이며 그 근원은 욕심(貪)과, 분노(瞋)와, 어리석음(痴)이다. 즉 '욕심을 내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좀 지혜롭게 살아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못해 부처가 되지 못하고 속세(俗世)의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아 번뇌를 없애는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가르쳐 주셨다. 정견(正見).바로 보라! 남의 잘못을 헐뜯지 말라. 정사유(正思唯). 바로..

지난 글 편집 2023.10.03

후회 없이 사는 법

경봉스님은 평소 스님들에게 물같은 삶을 살으라고 하셨다. "만물(萬物)을 살리는 게 물인 기라. 제 갈 길을 찾아 쉬지 않고 나가는 게 물인 기라. 어려운 구비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게 물인 기라. 맑고 깨끗하여 모든 더러움을 씻어 주는 게 물인 기라.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고 고기를 키우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는 게 물인 기라.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게 이익을 주어야 하는 기라. 물처럼 살거래이, 물처럼 사노라면 후회는 없을 기라." 라고 하셨다. 옛 성현들도 수유사덕(水有四德)이라고 물에는 4가지 덕(德 = 仁, 義, 禮, 智))이 있다고 했다. 1).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이를 어질다 하여 인(仁)을 생각하고, 2). 물은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 준다. 이를 의롭다 하여 의(義..

지난 글 편집 2023.09.26

동학의 신(神)

동학(東學)의 창시자(創始者)인 최재우(崔齋愚)가 처음에는 시천주(侍天主)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신다." 이었다. 인격적(人格的)이고 초월적(超越的)인 주재자(主宰者) 신(神) 개념과, 내적(內的)인 신(神) 관념이 혼재(混在)되어 있었다. 시천주(侍天主) 사상(思想)이 2대 교주(敎主)인 최시형(崔時亨)에 와서 사인여천(事人如天)사상으로 변했다. 사람을 하늘 같이 섬기라. 는 뜻인데 천주(天主)라는 인격적(人格的) 존재 대신 천(天)이라는 비인격적(非人格的) 개념이 강조 되었다. 3대 교주인 손병희(孫秉熙)는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재편하면서 내 세운 동학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인데, 이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 는 뜻이다. 즉 인간(人)과 하늘(天)이 완전히 동일(同一)시 된다. 신(神)의 초월..

지난 글 편집 2023.09.26

마음에 빚 갚으며 살자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려고 하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자연의 혜택과 모든 이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편리하게 쓰며 이웃의 도움으로 편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당연히 내 권리인 줄 알고 있으니 빚지고도 빚인 줄 모르고 있다. 그러기에 깨달은 자는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 진 빚을 조금씩 갚아가는 것이다. 자비와 봉사는 결국 내가 진 빚을 갚는 일인데, 그것을 고마워하는 이들을 통해 오히려 나 자신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니 마음이 맑고 향기로워진다. 내 언행이 자연과 모든 생명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빚 갚는 삶을 살자. 감사하면 행복해 지는 것을........

지난 글 편집 202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