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善惡의 彼岸)호반별장

선도 버리고 악도 버려라. 그것은 네 마음이 만든 것이니라.

본래 고요의 땅에 생명의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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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石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우파굽타'라는 수행자(修行者)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다 원인(原因)에 의한 결과(結果)이고, 그 원인(原因)과 결과(結果)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反復)되는데,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설법(說法)하셨다. '우파굽타'는 자기의 운명(運命)을 좋게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기로 결심(決心)했다. 그는 이를 측정하기 위해 매일 같이 하루의 일이 끝나면 반성(反省)하고 오늘 좋은 일을 했으면 흰 돌을, 나쁜 일을 했으면 검은 돌을 하나씩 주어 왔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선(善)을 행할 기회가 있다. 처음에는 검은 돌무더기가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흰 돌무더기가 점차로 높아져 흰 돌..

지난 글 편집 2023.01.21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장보살은 전생에 어느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났었다.고 한다. 열여덟 살 되던 해 추운 겨울인데 혼자서 친척 집에 갈 일이 있어서 음식을 싸 들고 대문 밖을 나와 얼마쯤 걸었는데, 길거리에 헐벗고 굶주린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겉옷을 벗어 감싸드리고 먹을 것을 반쯤 나눠드리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던 길을 걸었다. 얼마쯤 가다 보니 병든 젊은 부부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쓰러져 신음하고 있기에, 이들에게도 먹을 것과 옷을 벗어 주었다. 자신의 추위도 잊고 불쌍한 저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까.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눈앞에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데 벌거숭이 였다. 이 추운 겨울에 아이가 얼어 죽을 것만 같아 자신의 속옷을 벗어 아이를 감싸주고 나니 자신이 알몸이 되었다. 그때였..

지난 글 편집 2023.01.04

본향(本鄕)

언제나 그랬듯이 사찰에 손님이 오시면, 큰스님은 대중을 불러 모아놓고, 이분은 내 본향(本鄕)에서 오신 분이니 정성을 다해 편하게 해 드려라. 하신다. 대개 사찰에 오시는 분들은 큰 스님 뵙기를 원하고 상담을 마친 후에 늦으면 하룻밤 쉬고 가시는데, 오시는 손님마다 본향에서 오신 분이라 하시니 믿기지 않아 하루는 스님께 여쭈어보았다. "큰 스님! 스님은 본향이 어디세요? 스님은 오시는 손님마다 본향에서 오셨다고 하시니 궁금합니다." 동자 스님이 묻자 큰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그대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나? 나도 그곳에서 왔다네....." 인간의 본향(本鄕)은 다 같은 곳이 아닌가?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가 있던 곳이라면.......... 어찌 인간뿐 이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

지난 글 편집 2022.12.30

송시(送詩) 2022.

송시(送詩) 맹물/성담/유해천 많이도 내렸구나 새하얀 눈이 저무는 12월 끝 자락에 이 해를 깨끗이 지우고 싶었나 보다. 뒤돌아 보니 코로나와 싸우는 힘겨운 국민 진보와 보수의 끈질긴 권력 다툼 수시로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내란과 외란으로 얼룩진 이 한해를 묻어 버리고 싶어 저리도 많은 눈이 내리나 보다. 새해엔 눈덮인 들판을 똑 바로 걸어가는 마음으로 모두가 새로 시작하는 한해가 되기를 두손모아 염원해 본다.

토룡탕(土龍湯)

아주 먼 옛날 가난한 사찰에서 유명한 노(老)스님이 중병을 앓고 있었다. 기력이 점점 쇠약해져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데 가난한 절 살림이라서 보약 한 첩 못 쓰고 모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하루는 젊은 공양주 스님이 호미와 바가지를 들고 나갔다 와서 노스님께 국을 끓여 드렸는데 그날은 식사를 잘 하시었다. 젊은 스님은 매일 같은 국을 끓여 드렸고 스님은 원기를 차츰 회복하시어 한 달 만에 완쾌되셨다. 하도 신기하여 도반들이 무슨 국을 끓여 드렸기에 스님이 회복 되였느냐? 고 물었다. 공양주 스님이 토룡탕(지렁이)이라고 말하자 스님들이 깜짝 놀랐다. "아니! 살생을 하지말라는 것를 첫 번째 계율로 받은 스님이 계율을 어겼으니 큰일 났다" 이제는 파계승이 됐으니 절을 떠나야 한다고들 야단이다. 젊은 공양주 ..

지난 글 편집 2022.12.23

금란지교(金蘭之交)

'장 프랑소와 밀레’는, 만종, 이삭줍기, 씨 뿌리는 사람, 등 농촌의 일상생활을 그리는 유명한 화가인데, 그가 젊었을 때는 무척 가난하여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는 추운 겨울에 난로에 지필 땔감을 살 돈이 없어서 온 가족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어느 날 이런 소문을 듣고 유명한 화가로 이름이 난 ‘루소’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야~! 기쁜 소식이 있다네. 어떤 사람이 자네의 그림을 한 점 사고 싶다고 하는데, 바쁜 일이 있어 로마로 가면서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네, 자네의 그림 중에 '접목하는 농부'를 팔지 않겠나? 그림값으로 그가 삼백 프랑을 주고 갔다네.“ 밀레는 너무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림을 내어 주었다. 밀레의 가족은 그림판 돈으로 추위를 녹이고 배불리 먹으며 추운 겨울을 지낼 수 있..

지난 글 편집 2022.12.18

연목구어(緣木求魚)

신라시대에 서라벌 토암산에 광덕스님이란 분이 작은 암자에서 여인과 함께 살며 열심히 염불 수행을 하고 있었다. 광덕스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인 엄장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혼자서 떠돌아다니며 수행정진을 하였는데 가끔은 둘이 만나 덕담(德談)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보게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어 극락(極樂)에 가게 되면 그 곳의 사정을 알려주기로 약속하세"둘이는 단단히 약속을 하고 몇 년이 지난뒤 엄장의 꿈 속에 광덕스님이 나타났다. "이보게 나는 이제 죽어 극락세계로 들어가게 되였으니 정말 기쁘네, 자네도 곧 따라 오게나"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도 선명하여 이튼 날 광덕의 집에 가 보니 간밤에 광덕스님이 열반(涅槃)하셨다고 여인이 슬피 우는 게 아닌가. 엄장은 광덕의 여인과 장사를 치른 ..

지난 글 편집 2022.12.13

본성(本性)

두 스님이 개울가에서 바리때(밥그릇)을 씻는데, 전갈 한 마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한 스님이 두 손으로 떠서 조심스럽게 건져 내는데 그만 전갈에게 쏘이고 말았다. 아픈 손가락을 참으며 다시 바리때를 씻고 있는데 그 전갈이 또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또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정성껏 떠서 밖으로 건져 냈는데 이번에도 또 쏘였다. 곁에 있던 스님이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 녀석을 연거푸 구해주시는 거요? 남을 쏘는 게 전갈의 본성(本性)인데 말이오." 그러자 스님은 하하하하~! 웃으며 "남을 구해주는 건 소승의 본성인가 보오."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처럼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곧 부처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부처의 본성을 가지고 태..

지난 글 편집 2022.12.09

고승의 지혜

낙산대불은 천년전, 해통스님이 시작하여 90년 만에 완성한 불상 높이 71m, 머리 14m, 귀 3m, 입 3m, 발등에 100명 앉을수 있다. 지금도 중국 영은사(靈隱寺) 대웅전에는 세계 최대의 목불(木佛)이 있다. 아름 들이 향장목(香裝木) 24개로 조각한 좌불(坐佛)의 높이가 24.8m 이니 과연 세계 최대의 목불(木佛)이다. 이 목불이 소멸 될 번한 것을 한 고승의 지혜로 살려 내시었다. 중국에 ‘장개석’ 정부가 부패하여 모택동이 새로운 공산주의 정부를 세울 때, 스님들은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다. 고 공산주의 이론에 위배된다 하여 홍위병들을 시켜 각 사찰마다 찾아가서 불상을 훼손하고 불태우게 하였다. ‘영은사’ 스님들은 이 거대한 불상을 어디로 숨길수도 없고 홍위병을 막을 수도 없어 쩔쩔 맬 ..

지난 글 편집 2022.12.05

제자(第子)

전쟁은 모든것을 휩쓸어 간다. 본래 개체는 인(因)이고 주변 정세는 연(緣)이 되어 인연(因緣)이 일어나는데, 넓게 보면 공업(共業)으로 인한 공과(共果)는 큰 폭으로 나타나니 아무리 선인(善人)이라 할지라도 전염병이나 전쟁(戰爭)같은 재앙은 피할 수가 없다. 1950년 6. 25사변이 났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9.28 수복을 하였으나, 중공군의 10만 대군을 지원받은 북한이 인해전술로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니,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퇴각하면서 작전상 오대산의 전 사찰과 인근 민가가 소각 대상이 되었다. 오대산에 있는 대부분 사찰의 승려들은 남으로 피난을 떠났고, '한암' 스님은 시자 몇 명과 상원사를 지키고 있었는데, 새벽에 국군 부대원들을 이끌고 상원사를 찾아온 장교는 절을 소각해야 하니 모든 스님은 피..

지난 글 편집 2022.11.30